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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이포그래피에서 찾은 새로움
  • 디자인포럼 에디터
  •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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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이포그래피에서 찾은 새로움

By 손성화 (스토리텔러)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힙스터들이 줄 서서 간다는 그 카페가 분명한데,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나 보던 음료회사 판촉용 유리컵에 플랫화이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겉면에 쓰여 있는 ‘코카-코라’ 대신 우유를 따라 마셨던 추억의 컵이 ‘힙’한 소품이라니! 한 때 온 부엌의 진열장을 장식했을 그 유리컵들은 7080 근대사가 담긴 한국표 빈티지가 됐다. 이와 비슷하게, 복고 디자인은 잊고 지냈던 것들에 다시 우리의 눈길을 이끈다. 더없이 친숙한 느낌과 함께. 그래서 나이 지긋한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최근 디자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벽이 허물어지면 사라질 기록. 책 ‘아파트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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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aprilsnow press>

강예린, 윤민구, 전가경, 정재완 Yerin Kang, Yoon Mingoo, Kay Jun, Jeong Jaewan, 

<아파트 글자 Apartment Letters>, 2016 

오래된 타이포그래피는 어디에 있을까. 평소 거리글자에 남다른 관심이 있던 북디자이너 정재완은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낡은 건물 외벽에서 70~80년대 글자들을 찾아낸다. 길에서 무심히들 지나쳤을 타이포그래피를 모은 포토북, ‘아파트 글자’는 수백 장의 사진과 시대맥락적 해석이 만나 탄생했다. 오래된 간판 글자는 마치 화석처럼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이전 건설사들의 자기피력이 담겨 있기도 하고, 한국적인 개발중심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2. 옛 간판을 디지털로, 배달의민족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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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한나, 주아, 도현, 연성체는 옛날 간판이 모티브가 된 글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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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은 키치한 B급 감성 브랜딩을 위해 적극적으로 전용 폰트를 제작했다. 이 폰트가 적힌 물건이라면 ‘배민’ 작품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정체성이 뚜렷하다. 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딴 ‘수아체’, ‘한나체’ ‘도현체’는 마치 옆집 꼬마 이름처럼 친숙한데, 디자인의 모티브를 살펴보면 더정감이 간다. 이 글씨체들은 제주도 호박엿 가판대의 삐뚤빼뚤한 손글씨, 아크릴판에 자를 대고 컷팅해 만든 스티커 간판, 붓으로 그려서 쓴 옛 간판 손글씨를 각각 본따 만들었다. 또한 모두가 키보드만 치면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함으로써, 옛 기술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그 감성을 재생산할 수 있게 했다.

3. 동네 수퍼마켓의 재해석, 쾌 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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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쾌슈퍼 instagram @q_supermarket>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팔고 싶어서 시작한 ‘쾌-슈퍼’는 동네 사랑방 같았던 옛 슈퍼처럼 친근하게 소통하는 것이 운영 철학이다. 마켓에 삶과 문화가 들어있다고 생각한 두 창업주는 서울 300여 슈퍼마켓을 직접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각 동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슈퍼마켓도감을 만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보았던 슈퍼가 편의점으로 바뀌어있는 것을 보고 더 늦기 전에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덕분에 낡은 외래어 표기법으로 적힌 ‘수퍼마켙’은 이제 사진에서나마 구경할 수 있게 됐다. 벌써 옛 것이 되어버린 슈퍼마켓의 외관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간판이다. ’불티나수퍼’, ‘그냥갈수없잖아수퍼’라는 키치함을 대체할만한 타이포가 과연 있을까. 수퍼마켓 간판 이미지를 재가공해 만든 디자인상품은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소유욕을 자극한다.

좋은 디자인이라 하면 ‘세련되고, 새롭고, 능숙하게 다듬어진’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낡고, 흔하고, 촌스럽기에 더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도 있다. 낡은 아파트는 재개발 앞에 무너지고, 동네 슈퍼마켓은 편의점으로 바뀌어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낡은 글자가 담긴 디자인은 잊힐 뻔한 여러 삶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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