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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많은’ 화장품 라벨에 담긴 디자인
  • 디자인포럼 에디터
  •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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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말이 많은’ 화장품 라벨에 담긴 디자인

 By 양진이 (스토리텔러)

매력적인 로고, 특이한 색감, 감각적인 폰트… 우리는 상품을 고를 때 패키지 디자인의 형태나 색감만큼이나 사고자 하는 제품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가 잘 드러나 있는 라벨을 보게 된다. 라벨 디자인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최소한의 필수적인 정보전달의 역할도 분명히 해야 한다. 정보전달이 주된 목적인 문자들을 나열하는 것- 문장과 문단도 라벨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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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의 시 ‘비수에 찔린 비둘기와 분수’ /
곰링거(Eugene Gomringer)의 시 ‘질서-무질서’/ 이상의 ‘오감도’  (출처:pinterest)

사실 문자의 추상성이 아닌 음성적이고 시각적인 물질성(materiality)에 주목한 것은 문학계에서 1950년대 시인 오이겐 곰링거(Eugen Gomringer) 가 구체시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교과서로 접하게 되는 이상의 작품같이 시 한편도 도형이나 그림처럼 단어의 띄어쓰기, 문자의 의도적인 배열과 나열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시각적인 자극은 우리로 하여금 글의 메시지에 이은 다른 차원의 감정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시도가 제품 포장 디자인으로 쓰이면 어떤 느낌이 들까?

1. 닥터브로너스 (Dr. Bronner’s All-One!)
미국 유기농 바디케어 브랜드 닥터 브로너스의 제품들은 자신의 가치와 제품의 소개, 함유 성분들에 대한 설명이 제품 전면에 3만개의 단어로 빼곡히 인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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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닥터브로너스 제품 라벨 디자인. (출처: pinterest)

닥터브로너스는 미국 및 유럽에서 유기농 및 천연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미생물에 의해 무해 분해되는 친환경 제품만을 생산한다는 메시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공정무역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식, 합리적인 소비 실천, 비윤리적인 동물실험 금지를 실천하는 내용과 더불어 필수적으로 표기해야 되는 화장품의 성분 정보, 브랜드의 자부심과 철학 등 방대한 내용을 가감없이 모두 인쇄되어있다 보니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글자의 크기도 상당히 작으며, 글의 방향은 하나의 라벨에 다양하게 배치되어있어 제품을 이리저리 기울여야 겨우 읽을 수 있다.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요즘의 트랜드에 역행하는 꽉 찬 타이포그래피 라벨 디자인은 오히려 시선을 끄는 역할을 한다. 특별한 로고와 일러스트가 아닌 메시지 자체가 시그니처 디자인이 된 것이다.

2. 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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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키엘의 화장품 라벨과 제품 디자인 (출처: pinterest)

또 다른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를 표방하는 키엘(Kiehl)사의 제품들도 최대한의 글씨와 최소한의 일러스트를 사용한다. 라벨만 보면 이것이 팜플렛인지 사용 설명서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약국에서 시작된 브랜드 스토리를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약통이나 연고를 연상시키는 용기,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천연 성분의 배합이라는 기술력과 상품의 개성을 단순한 라벨디자인으로 스토리텔링을 한한 것이다. 키엘의 라벨은 의학품과 같이 화장품의 효능과 성분, 개인별 피부 증세 맞는 적합한 전문 정보를 전달한다. 매장의 전문 컨설턴트 없이는 혼자 고르기에 다소 어렵고 까다롭다. 라벨을 연구해야 하는 노력이 요구되나, 빼곡하고 꽉찬 문장들은 그 자체로써 디자인이 되어 ‘키엘’이라는 로고가 없어도 브랜드네임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게 하는 것이다.

3. 이솝 (Aesop)
이솝 역시 호주의 자연주의 천연화장품 브랜드이다. 이솝 화장품의 라벨 역시 은은한 아이보리색과 검정색이 교차되어 명료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빼곡히 나열한다. 이솝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창립자 데니스 파파티스(Dennis Pahphitis)는 제품 곳곳에 이솝 우화의 격언들을 새겨놓기도 한다. 제품자체에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디자인이나 로고, 심볼이 화려하게 새겨진 라벨을 전부 의도적으로 배제하되 매장의 내부 인테리어나 건축에는 각 도시와 국가에 따라 달리하여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고 한다. 제품명도 애칭이나 미사여구 없이 제품의 주된 재료+제품 유형으로 결합된 간결한 이름을 추구하며, 자연유래 성분 전부를 빼곡히 싣고 많은 색감을 쓰지 않은 라벨 디자인에서 극도의 실용주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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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esop의 제품들과 미국 ‘The invisible Dog’점 매장 (출처: Aesop.com/us)

글로벌 한 다국적기업의 화장품들은 라벨에 브랜드 로고와 심볼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함유된 성분과 기능은 사용설명서로 첨부한다. 일러스트는 언어의 장벽이 없고,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대기업의 제품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효과적으로 각인된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소비되기가 쉽다. 하지만 결코 간단한 단어로 설명되기 힘든 자연주의와 지속 가능한 가치를 내세우는 브랜드들은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한다. 단어와 문장은 디자인이 되고, 이제는 빼곡한 라벨을 보기만 해도 자연속에 휴식을 취하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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