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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아라드가 말하는 디자인과 예술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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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론 아라드가 말하는 디자인과 예술

By 안희찬 (스토리텔러)
세계 3대 디자이너 중 한 명, 유려한 곡선으로 대표되는 그의 디자인 세계, 건축가의 재능을 겸비한 디자이너. 론 아라드 (Ron Arad) 에게 붙은 여러 수식어 들이다. 디자인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천재 디자이너인 론 아라드. 그러나 그는 디자인 예술이란 말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자신의 디자인을 디자인 예술 (디자인 아트) 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애원하는 론 아라드, 왜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일까? 지금부터 론 아라드에 대해 알아보자.

< 론 아라드, 사진 출처 : Driade >

1. ‘디자이너’ 론 아라드

론 아라드는 1951년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에서 태어났다. 예루살렘 예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영국으로 향한 그는 런던 AA 건축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햄스테드의 작은 건축사무소에서 잠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일을 그만뒀다. 디자인을 하러 영국에 왔지만 그가 마주한 일은 제도판에 앉아 창호표만 만드는 단순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 둔 그 날, 아라드는 자신의 첫 작품을 만들게 된다. 일을 그만두고 고물 하치장을 지나가다가 의자를 만들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녹슨 로버 폐차에서 가죽 의자 두 개를 뜯어내 만든 의자, ‘로버 2000’이었다. 이 후 아라드는 피터 킨과 톰 딕슨과 함께 가구 공방 ‘원 오프’를 설립했다.

< 로버 체어, 사진 출처 : Artnet >

아라드는 1987년에 자신의 디자이너 인생의 기로를 결정하게 된 일 하나를 겪는다. 1987년 독일 카설 도큐멘타 때 이다. 아라드는 자신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 ‘풀 하우스’를 선보였다. 풀 하우스는 디자인에 새로운 옵션을 제시했다는 극찬을 받은 역작이었다. 이 때 비트라 회장 롤프 펠바움과 팝아트계의 딜러 비숍베르거가 구매 제안을 했다. 아라드는 비트라에 자신의 제품을 팔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후 가구 회사 아르테미데, 카르텔, 모로소 등과 협업을 하며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아라드는 대량 생산 오브제에도 자신의 디자인적 감성을 녹여내며 현대 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만의 메탈 디자인과 3차원적 곡선 디자인은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매김했다.

2. 디자인 예술의 선구자?


< Well tempered chair, 사진 출처 : icollector.com >

혹자는 론 아라드를 보며 말한다. 디자인 예술의 선구자라고. 그러나 아라드는 이 말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는 상업성을 선택하며 산업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의 매력에 빠진 이후 그는 이에 맞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탐구했다. 그리고 실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런 아라드를 보고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 데안 수직은 말했다. “아라드는 소재의 특성을 존중하고, 소재가 요구하는 구조와 디테일에 따르고, 거기서 나온 미학적 결과를 수용하는 쪽을 택했다.”

< 책벌레, 사진 출처 : Connections at home >

오늘날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예술가들이 많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월급쟁이 아니면 일용직으로 삶을 이겨나가고 있다. 이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디자이너가 바로 론 아라드다. 그는 이런 말을 싫어할지 모르지만 예술적 수준의 디자인으로 대량생산 디자이너로서 유래 없는 성공을 거둔 사람이 론 아라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디자인 예술이란 말을 싫어하지만 디자인과 예술, 그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디자이너’ 론 아라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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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아라드#디자이너#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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