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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폐공장, 스토리를 입었을 때…부산 ‘F1963’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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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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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서 내려 20분. 수영구 망미동에 도착하면 부산의 파란 하늘 아래 자리한 F1963을 만날 수 있다. 과장되게 외관을 치장하지도 않았다. 도시 안에 어우러진 작지도 크지도 않는 ‘F1963’ 문패가 출발점. 밖에서 만나는 F1963과 안으로 한 발 들인 F1963은 전혀 다른 세계다. 하루종일 머물러도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가봐야 할 공간’들이 많다. 단소 소리 같은 바람이 부는 대나무 숲(소리길)을 지나면 모두의 ‘놀이공원’이 시작된다.

 

한 때는 산업 역군이었던 도시의 공장들은 ‘쓸모’를 다하면 골칫덩어리가 되기 일쑤다. 삭막한 철제 구조물에서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45년간 와이어를 생산하던 7600평(2만 5000㎡)의 공장 부지. 2008년 문을 닫은 고려제강(Kiswire)의 모태(수영공장)는 팬데믹에도 60만명(2020년 기준·2021년 10월 현재 48만명 방문)이 방문하는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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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963은 망미동 안에 남겨진 사회 유물을 되살린 재생건축의 대표 사례다. 공간의 이름부터 의미를 담았다. 1963년에 세워진 공장(Factory)이라는 뜻이다. 건물 하나 하나가 전시작품처럼 서 있는 F1963은 세계적인 ‘미니멀리즘 건축가’ 조병수(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가 설계했다. 그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공장을 덧붙여가며 하나의 커다란 공장이 된 이곳은 세월의 흔적을 쌓으며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건물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며 공장을 처음 방문하던 때를 떠올렸다. “오래 묵은 기름때와 여기저기 벗겨진 페인트, 40여년을 버텨온 목재 트러스, 한때는 공장의 심장이었던 발전기까지 그 안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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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963의 설계 방향은 ‘공존’이었다.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는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담는 방식이다. 조병수 건축가는 “세월의 흔적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덮어 버리거나 낡은 것을 어울리지 않게 그대로 두지 않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이루게 했다”며 “기존의 형태를 최대한 보존한 채 새로운 것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옛것을 활용하되 옛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재생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는 공간”(F1963 관계자)이 되도록 했다.

 

F1963의 첫인상은 세련됨이다. 과장하지 않은 절제된 건축물엔 그의 철학이 담겼다. ‘재생건축물’ F1963의 특징은 세 가지다. 이곳은 보존하기(그대로 쓰기, 재활용하기), 잘라내기(중정, 전면파사드), 덧붙이기(익스팬디드 메탈을 활용한 패브릭)의 방식으로 설계됐다.

 

조 건축가는 보존하기 방식에 대해 “다양한 오브제와 공간, 시간의 흔적이 주는 감동을 주기 위해 버려지는 것을 최소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장의 허물어진 벽돌벽, 발전기 등의 원형을 보존했고, 걷어낸 콘크리트 슬라브를 발판으로 재활용했다. 목재 트러스는 벤치로, 철재는 안내판으로 다시 사용했다. 이를 통해 “남겨진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경험이 생겨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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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963은 전시장 겸 공연장인 석천홀, 도서관을 비롯해 테라로사 커피, 프라하993, 복순도가, 예스24는 물론 국제갤러리, 금난새뮤직센터,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이 자리하고 있다.

 

조병수건축연구소에 따르면 F1963은 3개의 네모로 구성된다. 중앙에 위치한 첫 번째 네모는 “공장의 일부분을 잘라내 만든 중정”이다. 공장의 천정을 허물고 콘크리트 바닥을 잘라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중정을 조성했다. 조 건축가는 “기존 땅에서 약 50㎝를 파고 들어가 원래 흙과 땅을 들어냈다”며 “배수를 위해 마사를 얇게 깔아 원래 땅의 단단함을 두 발로 디딜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F1963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는 중정은 빛과 바람이 스며 ‘폐쇄된 공간’을 열린 공간(F1963스퀘어)으로 확장했다. 이곳에서 세미나, 파티, 음악회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두 번째 네모는 카페, 식당 등으로 구성된 휴식 공간이고, 세 번째 네모는 미술관(국제갤러리)과 도서관, 서점(YES24) 등 다양한 문화예술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배치했다.

 

두 번째 네모인 상업시설은 기존의 공장 한가운데를 잘라 들어왔다. ‘잘라내기’의 방식이다. 조 건축가는 “새로운 상자(상업시설) 주변에 자연스럽게 생긴 전시공간, 환기와 채광을 확보할 수 있는 잘려진 공간에 중정을 둔 형태다”라며 “중정을 둘러보며 기존 공장의 공간적, 시간적 위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전면(진입부) 벽체를 제거하고 유리를 설치, 파란색 익스팬디드 메탈을 입힌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공장 외벽에 전혀 다른 소재를 붙여 “과거의 공간에서 확장적 공간으로의 가능성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 건축가는 “그물 같은 익스팬디드 메탈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어두웠던 공장을 환하게 비추고, 빛의 반사를 통해 충분한 채광이 들어오도록 했다”며 “지붕에는 렉산을 더해 비를 막고 입면에는 스크린만 설치해 자연바람이 통하는 진입공간을 만들었다. ‘자연과의 유기적 연결’이라는 건축 본연을 위해 하나의 장치로서 스크린을 다양한 재질과 형태로 적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F1963의 첫인상을 결정한 것도 바로 익스팬디드 메탈이다. 기존 공장의 틀은 남겨뒀지만, 이전의 모습이 떠올리지 않는 것도 바로 메탈 소재가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메탈’ 소재의 특성은 F1963에 다양한 스토리를 만든다. 와이어 공장이었던 과거, 복합문화공간이 된 현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미래가 공존하게 하는 힘이 있다.

 

조병수 건축가는 이에 더해 “진입부의 파란색 익스팬디드 메탈은 다양한 색깔을 가진 F1963을 하나로 묶어준다”며 “아침과 저녁, 밤에 각기 다르게 보이는 빛의 변화가 공간을 흥미롭게 만들고, 맞은 편의 대나무 숲과도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사옥과 복합문화공간을 연결하는 15m 높이의 F1963브리지도 ‘덧붙이기’의 요소다. 본사 주차장에서 F1963스퀘어와 가든으로 연결되는 다리다. F1963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이곳은 부산 최고의 전망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F1963의 전경과 수영 강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F1963은 다양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건축 만들기를 제시했고, 원형을 보존해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미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절제’를 강조했다.

 

조 건축가는 “옛것과 새것이 만나 어떤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오래된 것이 가진 어두운 면모를 유연하게 재활용해 긍정적인 분위기와 경험으로 전환하고자 했다”며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기존 건물의 보존에 대한 관심, 공공성에 대한 존중이 높았던 건축주의 의지와 역할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 F1963은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빛을 머금은 문화 활력소로 자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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