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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으로 추억을 기록하다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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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아날로그 감성으로 추억을 기록하다

By 홍연진 (스토리텔러)

빛바랜 색감. 초점이 맞지 않아 흔들린 흔적. 안개 낀 것 마냥 뿌연 자국들. 요즘 SNS를 둘러보다 보면 빈티지한 감성의 사진들이 눈에 띈다. 일부러 분위기를 잡지 않아도 분위기가 있어 보이는 사진이랄까. 하지만 이 사진들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 아니다. 필름 카메라를 현상했을 때의 효과를 재현한 아이폰 앱이다.

최근 필름 카메라 열풍이 불면서 모바일 시장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가진 앱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로 아날로그 느낌을 낸다니, 모순적으로 들려진다. 이러한 열풍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나만의 감성을 담고 싶은 의지, 혹은 사진을 좀 더 신중하게 골라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빈티지한 감성의 앱은 앞으로도 큰 인기를 끌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변화가 빨라질수록 옛것의 소중함은 더해지기 때문이다.

1. 구닥(Gudak)


<사진 출처=직접 캡처>

‘구닥(Gudak)’은 인기의 한가운데 있는 앱이다. 지난 7월 7일 앱스토어에 출시된 이래로 국내 앱스토어 유료 앱 전체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앱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구닥은 ‘구닥다리’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말 그대로 오래되어 낡은 카메라라는 뜻이다. 자동화되어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면서 순간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촬영한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사진이 인화되기까지 기다리는 일도 드물어졌다. 코닥 일회용 카메라를 오마주 삼은 구닥은 필름 카메라가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주했던, 바로 그 아날로그 감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앱을 다운받은 후 촬영을 시작하면 필름 1개가 생성된다. 하나의 필름당 24장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촬영 가능한 사진 수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찍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용자는 가장 담고 싶은 순간에 카메라를 들게 된다. 또 필름을 다 쓰기 전까지는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없다. 이 사진들은 마지막 필름을 쓴 시점부터 3일 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앱이다.


<사진 출처=직접 캡처>

촬영을 할 때도 피사체를 액정 화면 전체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필름 카메라처럼 작은 뷰파인더로만 볼 수 있다. 초점을 정교하게 맞추기 어렵지만, 그것이 또 이 앱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본인도 모르게 눈을 뷰파인더에 갖다 대는, 재미있는 실수를 하게 된다.

구닥을 만든 Screw Bar Inc. 멤버들은 <캠퍼스 잡앤조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고른다는 성격이 강해진 것 같아요. 의미 없이 찍은 수많은 사진이 추억보다는 ‘용량’으로 인지된다는 점이 아쉬웠죠. 저희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가치를 두고 싶었고, 그 사진을 ‘추억’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한 장 한 장 마음을 다해 찍고, 그걸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떠올리게 됐죠.”


<사진 출처=‘구닥’ 앱을 통해 직접 촬영>

구닥은 그것을 통해 찍은 사진들뿐만 아니라 그 순간까지 모두 추억이 되게끔 한다. 사용자는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찍기 위한 과정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Screw Bar Inc. 멤버들도 바라던 바였을 것이다. 유한함, 기다림, 순간이 어색해진 이 시대에서 구닥은 단순한 사진 효과를 넘어서서 많은 메시지를 던지는 앱이다.

2. 필카비(Feelca B&W)


<사진 출처=직접 캡처>

필카 비는 필름 카메라에서 느낄 수 있는 사진 촬영과 인화의 경험을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구닥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필카 비는 수동 초점 다이얼을 돌리며 빛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초점이 조금 나가기도 하고, 흔들리는 사진이 찍힐 수도 있다. 또 36장까지 촬영할 수 있고, 격자 선을 설정하여 섬세하게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타이머 설정도 가능하다. 3초, 5초, 7초, 10초로 구성되어 있다. 구닥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흑백필름이다. 실제 필름 카메라의 Black and White 필름으로 찍은 결과물들을 참고하여 깊이 있는 흑백 효과를 냈다.


<사진 출처=‘필카 비’ 앱을 통해 직접 촬영>

필카 비는 사진첩의 기능까지 지니고 있다. 필름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폴라로이드처럼 간단한 메모를 남길 수도 있다. 흑백 사진만 따로 모아놓고 보는 기분은 색다르다. 그다지 못 찍은 사진에 흑백 효과를 입히니 왠지 잘 찍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3. 랃 캠코더(Rad VHS Camcorder - Retro Camera)


<사진 출처=직접 캡처>

비디오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담을 수 있다. ‘랃 캠코더(Rad Camcorder)’는 일반적으로 촬영한 비디오에 VHS 효과를 입힐 수 있는 앱이다. VHS는 ‘Video Home System’의 줄임말로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레코더 방식을 말한다. 랃 캠코더를 통해 촬영하면 1980~90년대에 촬영된 것 같은 홈 비디오 느낌을 낼 수 있다.


<사진 출처=직접 캡처>

촬영본 아래에 굵은 폰트로 날짜와 시간이 찍힌다. 재미있는 점은 날짜를 마음대로 조정해서 마치 1992년에 촬영한 것처럼 속일 수 있다는 점이다. 줌 인과 줌 아웃이 모두 가능하고, 셀카 기능까지 갖춰져 있다. 2016년에 처음 나왔을 때는 기본적인 촬영 기능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효과와 필터, 배경 음악까지 삽입할 수 있다.

앱 자체의 디자인도 상당히 재미있다. 앱을 실행하면 화면 조정 스크린이 등장한다. 어렸을 적 비디오를 볼 때 마주했던 화면이 나오니 반갑다. 촬영 화면에서도 캠코더와 동일한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전체 액정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화면에 지지직거리는 효과, 빛바랜 색감까지 가히 캠코더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현재 구닥을 잘 사용하고 있다. 처음 사용할 당시에는 구닥에서 요구하는 3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기 어려웠다. 결국 핸드폰 시간을 미래로 돌려서 사진을 미리 확인해버리고 말았다. 사진을 찍을 때는 참 행복했었는데, 고새를 참지 못하고 확인해버리니 그 행복이 반감되는 기분이었다. 그 날 이후로는 기다림의 미학을 지키고 있다.

평소에는 저장용, 자랑 하기용으로 찍던 사진이 구닥을 사용하고 난 후부터는 기록용이 되었다. 필름 카메라가 전부였던 시절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새삼스러운 것이 되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지금, 겉으로만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그것을 좇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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