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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으로 단절됐던 후암동 마을…‘길’을 내어준 건축물에 사람이 모인다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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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서울 용산구 후암동 끝자락에는 새로 생긴 ‘길’이 있다. 과거 소월로와 두텁바위로는 평면적으로 가깝지만 절벽으로 단절돼있어 주민들의 이동이 제한적이었다. 15m의 단차로 경계가 명확했던 두 길을 이어준 건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경사로에 자리 잡은 건축물의 외부 계단은 지하 1층부터 지상3층까지 끊김 없이 연결돼 일종의 ‘공공 보행로’ 역할을 한다.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물 민간부문 대상을 수상한 ‘콤포트 서울’의 얘기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건축사사무소 ‘경계없는작업실’에서 문주호 소장을 만났다. 그는 “콤포트 서울의 부제는 ‘후암소월 1길 1’로, 건축물 자체가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착안했다”며 “소월로와 두텁바위로를 연결하는 건축물을 지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하면 공간의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콤포트 서울이 사람들이 왕래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건축주의 결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처음 건축주가 문 소장에게 제안한 것은 “같이 땅부터 찾자”는 것이었다. 함께 적합한 토지를 물색하던 중, 건축주는 소월로를 지나가다 ‘토지 매매’ 현수막을 접했다. 평소 후암동을 좋아했던 건축주는 “마을에 의미있는 건축물을 지어달라”고 의뢰했다. 건물 공사를 시작한 이후엔 사옥이나 대사관으로 쓰기 위한 통임대 문의가 들어왔다. 수익 측면에선 안정적이었지만 건축물이 사유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현재는 건축주가 카페·전시관·상점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콤포트 서울의 정중앙에는 과감하게 계단이 배치돼있다. 문 소장은 “길이 공간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계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방문객이 두텁바위로를 통해 1층 계단으로 진입하면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건축물에 머물렀던 시선이 마을 풍경으로, 이어 서울 전망으로 옮겨가고 최종적으로 건물의 옥상에 이르게 된다. 옥상은 지역 주민들의 보행 통로로, 방문객들에게는 휴식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콤포트 서울이 2022년 완공된 후 지역 상권도 활기를 띠고 있다. 건물을 찾는 유동 인구가 늘면서 공실이었던 인근 상가도 하나둘씩 카페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문 소장은 “최근 공공성과 상업성은 서로 닮아가고 있다”며 “공공 보행로를 만들면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공간이 살아나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마을에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구상했던 것이 실현됐다”며 “가끔 콤포트 서울에 방문하는데, 커피를 마시던 노부부, 쉬어가던 등산객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문 소장은 서울대 건축학과 동기인 임지환, 조성현 공동 창업자와 함께 2013년 경계없는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는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경계없는작업실이라 지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8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에는 각자의 길을 찾아 갈라졌다. 현재 문 소장이 홀로 이끌고 있는 경계없는작업실은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프로젝트 60건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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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소장은 ‘가장 의미 있는 건축물’ 중 하나로 첫 번째 프로젝트를 꼽았다. 그에게 가장 먼저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는 그의 아버지였다. 정년퇴직 후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는 전문 지식이 없는 탓에 고민이 많았다.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아파트 관리직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부자가 생각해낸 방법은 건물주가 되어 고정적인 임대 수입을 받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부모님이 거주하던 아파트 한 채를 팔고 정년 퇴직금까지 끌어 모았다.

 

조성현 공동 대표가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소개시켜주며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탔다. 문 소장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2종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 폭 7m, 길이 13m, 면적 113m²의 좁고 긴 땅을 추천받았다. 앞 도로가 끊겨있어 저평가된 땅이었다. 용적률을 확보하기 어려운 땅이었고, 예산이 초과될 수 있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강남에서 1인 고급 원룸이나 투룸 수요가 급증하는데 물건이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고 매입을 결정했다.

 

그는 “2010년대 초반 강남은 원룸이나 투룸 등 고급 주거 임대시장이 활성화된 상태였다”며 “압구정, 가로수길, 도산공원 등 강남 일대에 사무실이 많이 생기면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주거 수요가 생겼지만 이를 충족시킬만한 작고 아기자기한 1인 주거상품이 부족했다”고 했다. 이어 “미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집을 짓고 싶어 처음부터 ‘테트리스 하우스’라고 브랜딩을 하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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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설계한 ‘테트리스 하우스’는 여러 모양의 초소형주택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다. 관건은 200%인 용적률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었다. 2차원 평면에서 볼 수 없는 공간을 찾아내 최대한 활용했다. 땅의 긴 부분을 5m 폭으로 이등분하고, 양쪽마다 ‘ㄴ자’ 모양 방에 ‘ㄱ자’ 모양 방을 겹쳐놓았다. 마치 테트리스처럼 위·아래 방을 수직으로 합쳐 큐브 형태로 구성했다.

 

문 소장은 14㎡크기의 원룸 10개를 만들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형태의 테트리스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층고도 2.2m에서 4m로 입체적이다. 계단을 돌림 모양으로 내고 각 방을 반 층마다 배치해 서로 입구가 마주 보지 않도록 배려했다. 지하 1층과 꼭대기 6층에는 사무실도 들였다. 그는 “구조가 복잡해 예상했던 것보다 공사비가 1.5배 이상 들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그는 “건물이 완공된 후 종종 효자라는 얘기를 듣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의 ‘노후 자금’ 역할을 하는 테트리스 하우스는 완공 후 세입자를 들여 12%의 수익률을 냈다. 그는 “이후 부동산 개발업자가 찾아와 테트리스 하우스를 콘셉트로 건물을 지어달라고 했고, 실제로 3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테트리스 하우스는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용적률 게임’의 대표작으로 선정돼 전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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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소장이 최근 설계한 건축물 중 하나는 ‘더아크70’이다. 충남 홍성군 홍성산업단지 내에 설립한 벽산 홍성공장의 커뮤니티 센터다.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벽산의 미래 기업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공장 본사를 지어달라는 것이 건축주의 주문이었다”며 “물류 시스템이 중심이 되는 공장 지대에 공장 본사·연구 시설·기숙사 등을 작은 마을처럼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공형 매스를 겹친 듯한 형태를 설계했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입체적인 단면을 갖추고 있다. 사무 근로자와 공장 근무자가 각각 다른 업무 시간에 일한다는 점을 고려해 1층은 공장서비스공간으로, 2층은 사무공간으로 공간을 구분했다. 1층과 2층을 비틀어 각각 외부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한 지점에서는 만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분리와 연결이 자유로운 가변적인 공간으로 모든 직원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통합 공간을 확보했다.

 

외관 자재도 차별화했다. 벽산에서 생산하는 베이스 패널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건축가들이 애용하던 자재였다. 하지만 색감 차이, 불균질한 질감, 가격 상승 등으로 시장에서 외면받게 됐다. 문 소장은 베이스 패널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물성을 살려 재창조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연구원과 함께 베이스 페널의 색·표면·질감 처리 방식을 실험한 끝에 본연의 장점을 살려 건축물에 적용했다. 벽산은 새로운 베이스 페널을 상품화해 적극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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