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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페페, 사망하다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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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개구리 페페, 사망하다

By 한희림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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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맷 퓨리>

당신은 이 개구리를 알고 있는가? 바로 타임지가 선정한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캐릭터 1위를 차지한 ‘개구리 페페’(Pepe the Frog)이다. 2005년 만화가 맷 퓨리에 의해 탄생한 이 캐릭터는 그의 만화 ‘보이즈 클럽’에 등장하던 캐릭터로, 2009년부터 외국 커뮤니티 4chan 등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2015년부터 폭발적인 인지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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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맷 퓨리 텀블벅(http://mattfurie.tumblr.com)>

그런데 지난 8일, 원작자 맷 퓨리가 공식으로 개구리 페페의 사망을 선고했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해내며 사랑받던 페페. 행복한 개구리일 뿐이었던 개구리 페페가 어쩌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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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을 예고하는 게시물에 사용된 페페의 이미지. 사진출처 : 4chan의 /r9k/ 게시판>

개구리 페페의 슬픈 오명은 2015년 10월 1일, 움프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범인인 크리스 하퍼-머서가 4chan에 범행을 예고하면서 개구리 페페의 사진을 사용한 것. 이 때부터 개구리 페페는 혐오와 테러리즘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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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스로가 페페와 자신의 합성한 이미지를 공유했다. 사진출처 = 도날드 트럼프 트위터>

원작자 맷 퓨리는 자신의 캐릭터가 이러한 오명을 산 데에 불쾌감을 표하면서 무시하려고 했으나, 미국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지지자들인 ‘알트-라이트(alt-right)’에 의해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 혐오 등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대안우파라는 뜻의 ‘알트-라이트’는 전통적인 보수주의를 거부하고 인종차별주의와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트럼프와 페페의 얼굴을 합성하는 등 수많은 새로운 이미지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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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는 계속해서 페페의 평화로운 이미지를 부각하려 노력했다. 사진출처 = 맷 퓨리 텀블벅(http://mattfurie.tumblr.com)>

 

원작자인 퓨리는 “한때 그저 평화로웠던 개구리에 불과하던 페페가 혐오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이들을 맹비난하고, #SavePepe 캠페인 등을 통해 페페의 이미지를 돌이켜보려 애썼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 페페를 악용해나갔고, 2016년에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에 의해 혐오 상징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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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민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모습을 페페에 담은 이미지. 사진출처 = reddit>

 

타임지는 이러한 상징조작이 페페뿐만 아니라 인터넷 문화의 전환점이라고 보도하였다. 결국 “내가 만든 캐릭터들은 나의 일부와 같다”며 페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던 퓨리는 결국 그림 한 장으로 페페를 ‘안락사’시켰다. 그는 “결국 페페는 당신이 의도한 상징을 뜻하겠지만, 페페를 창조한 나는 페페는 사랑의 상징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혐오의 상징이 된 페페. 사진출처 =CBC 뉴스>

세상에는 수많은 혐오의 상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온라인에서 익명을 빌려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도 많다. 혐오를 상징하는 말과 행동은 여전히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다. 개구리 페페는 극우주의가 낳은 비극적인 사이버 살인이다. 그야말로 인간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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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맷 퓨리 텀블벅(http://mattfurie.tumblr.com)>

퓨리는 분명 페페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네티즌들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만일 그가 저작권을 위해 이런 모든 이미지 보급 행위를 중단시켰다면 페페는 현재의 명성을 얻지 못했으리라. 그가 페페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이들도 페페를 사랑하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결과는 이러한 것이 아니었다.

어떠한 사람들은 ‘혐오할 권리’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나는 혐오를 혐오할 권리를 주장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혐오할 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비단 극우주의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극단주의와 혐오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각국에서 극단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정치인들이 당선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리라. 이번에는 희생자가 가상의 캐릭터였지만, 피해자가 가상의 캐릭터에 그칠 리 없다. 과연 인간의 이기심과 적대심의 끝은 어디일까. 극단적인 상황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퓨리가 십분 이해가 간다. 인간의 욕심에 희생당한 페페에게 명복을 빈다. 부디 그 곳에선 사랑의 상징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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