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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아트, 시대를 읽어내는 새로운 눈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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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뉴미디어 아트, 시대를 읽어내는 새로운 눈

By 홍연진 (스토리텔러)

1. 라즐로 모홀로 나기, 그는 누구인가?

<사진=Wikipedia>
헝가리 출신 라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Nagy, 1895~1946)는 시각 예술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다각적인 활동을 펼친 예술가이다. 그 중에서도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을 미쳤다. 1920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이후 반전통적인 예술운동을 주도했던 다다이스트와 교류를 시작했다. 그는 ‘기계는 아름답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다. 당시 ‘구조’를 작품의 영감으로 삼았던 예술가들처럼 철교, 라디오 송신탑, 터널, 나선형 계단 등 산업화의 결과물을 회화와 조각에 반영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1928년까지 머문 바우하우스(bauhaus)시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1923년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모홀리 나기를 예비 학부 과정의 학장으로 초빙하면서 시작되었다.
바우하우스는 러시아의 구축주의, 이탈리의 미래주의 등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합적으로 수렴했다. 이 시기에 그는 ‘바이마르의 국립 바우하우스 1919-1923’ 전시회의 카탈로그 편집과 디자인을 맡았다. 이 책에서 그는 바우하우스의 목적과 업적을 명시하였으며, 특히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절대적 명료성과 가독성이 잘 드러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 타이포그래피의 접근 방식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직접 촬영>
그는 특히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실험에 열중했다. 그래픽 디자인, 특히 포스터는 타입과 사진의 결합인 ‘타이포포토(typophoto)'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이포포토는 메시지의 즉각적인 전달을 위해 글자와 사진의 객관적 결합을 말한다. 타이포그래피와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은 바우하우스 구성원들에게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다양한 실험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빛, 소리, 움직임 등 비물질에 가까운 것을 재료로 삼아 기존에 없었던 상을 창조해냈다.
 
2. THE NEW VISION: from Bauhaus to A.I.
이번 전시는 앞서 소개한  현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인 라즐로 모홀리 나기를 주제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그의 시각적 실험을 주제별로 나누어 재해석한 전시회다. 모홀로-나기의 유산은 ‘시대를 읽어내는 눈’이다. 그는 기술과 예술을 통합시켜 예술의 표현법을 확장하고자 했고, 인간이 기술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기를 원했다.
모홀리 나기와 같은 눈으로 기술과 예술을 통합시키는 현대 작가들을 통해 오늘날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참여한 5명의 작가는 현실을 읽어내는 비판적인 수단으로 기술을 활용한다. 양민하 작가는 인공지능을 예술에 활용했고, 김병호 작가는 기하학과 재료를 활용했으며, 김수 작가는 키네틱 설치작업과 자연의 조화를 선보였다. 이들은 예술에 기술을 접목하는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현실을 재발견했다.
 
1) 김수 작가
<사진=직접 촬영>
김수 작가의 작품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시각적인 압도감을 주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실제의 모습에 가까운 설산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키네틱 구조물이 보였다. 그림자가 인상적이었던 키네틱 구조물은 버려진 뻐꾸기 시계의 부품들과 오르골로 제작되었다. 원시적인 분위기의 설산은 버려진 천과 밀가루로 제작되었으며, 산에 비친 달은 작가가 직접 찍었다고 한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작품들로 작가의 머릿속, 작업 노트 속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단상들이 형상화된 것이다. 벽면에 일렬로 전시되어 있던 작품은 작가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책 속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종이에 바느질했다고 한다. 세 작품으로 구성된 정원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한 결과물이다.
 
2) 전준호 작가
<사진=직접 촬영>
전준호 작가의 작품은 재개발 지역에서 수집해온 물건들로 제작되었다. 창과 문이 네 면을 둘러싸고, 집인지 폐기물 더미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이 몇 군데로 나뉘어 상하 수직 운동을 지속한다. 내부에 장착된 전기 자동화 기계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조각은 고층 빌딩으로 재현되는 재개발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그로 인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과거의 기억들을 계속 불러온다. 작가는 이 작품이 어느 순간 완벽한 모습으로 합쳐졌다 끊임없이 어긋나는 모습을 통해 불가능한 완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키네틱 작품 외에도 영상 작품이 있었다. 자연 속 버려진 건물 안에서 복사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다.
 
3) 김병호 작가
<사진=M컨템포러리 공식 홈페이지>
김병호 작가는 대량 생산되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그 재료의 주된 용도에서 벗어나 미학적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색 수직 형태의 재료를 겹쳐 만든 작품과 공작이 깃털을 활짝 편 것처럼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단순히 작품만 보았을 때는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적인 것은 벽면 곳곳에 거울이 있어 작품과 관람객이 그 안에서 하나 되는 체험을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공을 상징하는 수직개념과 자연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의 만남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장 내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했는데, 필자가 이전 작품들과는 한 데 어우러진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면 김병호 작가의 작품과는 거울을 통해 하나의 풍경 사진처럼 찍을 수 있었다.
 
4) 애나한 작가
<사진=직접 촬영>
애나한 작가의 작품은 그 자체로 완전한 체험 공간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연분홍색, 연보라색 등 파스텔 톤의 색감에 흠뻑 취해버렸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딛는 바닥에는 부드러운 소재의 카펫이 깔려있다. 벽면에는 ‘Hug Me', 'Kiss Me', 'Lie W/Me'라고 써져 있는 작품이 걸려있다. 전시가 개최되었던 M컨템포러리는 호텔 내에 있는 갤러리이다. 작가는 전시 공간의 특성에 주목하여 호텔이라는 장소, 연인이라는 대상,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표현했다. 세 요소 가운데에서 사적인 이야기가 오갈 것 같지만, 사실상 구체적인 정보는 모두 빠져버린 익명의 세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관람객이 마주한 공간은 특정한 공간의 재현이 아닌 내면의 상태를 재구축한 곳으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추상적인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5) 양민하 작가
<사진=M컨템포러리 공식 홈페이지>
양민하 작가가 제시하는 4점의 작품은 모두 현 시점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이자 한계를 드러낸다. 가장 최신인 동시에 기초 단계에 머물러있다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은 시각, 청각과 같은 인지 감각에서부터 고도의 추상적인 사고 체계까지 뻗어나간다. 작가는 이를 통해 ‘기계가 만들어내는 언어에서 창작의 바탕이 되는 어떠한 사유를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문제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드러내며,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시가 진행되었던 M컨템포러리는 지난 9월에 오픈한 르 메르디앙 서울 호텔 내에 위치한 곳으로 장르와 시대의 구분을 넘어 뉴미디어와 대중 예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갤러리를 표방한다. 순수 미술뿐만 아니라 기술을 접목한 뉴미디어와 디자인, 패션, 건축에 이르는 다양하고 참신한 예술을 소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갤러리가 목표한 바처럼 예술과 기술을 접목시킨 다양한 전시물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홀리 나기를 모르는 관람객 입장에서는 그와 이후에 전시를 선보이는 현대 작가와의 연관성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작품 설명이 없다는 점이었다. 도슨트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시간에 맞춰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다음 전시부터는 작품 옆에 간략하게라도 설명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 설명은 상세히 되어 있으나 추상적인 표현으로 쓰여 있어 일부 관람객은 난해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展은 오는 11월 19일까지 개최된다. 새로 개관한 갤러리인 만큼 그다지 붐비지 않아 조용하게 몰입해서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순수미술이 아닌 기술을 접목한 독특한 설치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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