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기대되는 영화 포스터 디자인

By 양진이 (스토리텔러)

영화만큼 자본과 예술이 집약적으로 축적된 매체가 있을까? 예술적 실험의 극치, 영상, 음악, 배우들의 표정, 미장센 등 미적인 장치들을 넘치도록 담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 영화의 한계는 점점 넓어져 첨단 과학을 실험하는 산업으로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러한 복잡하고 다채로운 자극을 만족시키는 ‘영화’의 첫 인상은 아주 심플한 포스터 한 장이다. 그것도 평면의 직사각형- 다름아닌 포스터, 그 중에서도 타이포그래피 일 것이다.

똑같은 이미지에 영어 폰트로 제목을 쓴 디자인과, 한글로 제목을 썼을 때 어떤 것이 디자인적으로 막연히 예쁘다고 느껴질까? 디자이너들의 고민은 한글 폰트가 가진 각진 느낌, ‘덜 예뻐 보이는’ 혹은 따로 노는 것 같은 막연한 디자인적 느낌을 지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덜 감각적인, 덜 세련된’ 포스터들이 주는 첫인상이 자칫 영화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질까 스틸컷으로만 티저 이미지를 돌리거나 에고편에 상당한 공을 들이기도 하였다. 영화적 시도와 스토리는 상당히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한글 포스터 만큼은 이미지+ 고딕체 제목 이라는 뻔한 구도에 머물러 있었다. 한글 폰트가 ‘끼얹어’ 지기 보다는 글자를 최대한 배제한 채 이미지가 풍겨내는 감성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단점이라면 글자라는 정확한 정보가 떨어져 결코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것. 

사진= 인기 있었던 영화의 포스터. 장르는 다 다르지만 구도는 비슷하다.

일관되고 깔끔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캘리그라피 문구가 영화 포스터들에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2017년 하반기에는 조금 더 과감해졌다.
1. 흥행보증 스타들 보다 폰트를 택하다-‘꾼’
올해 11월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지면의 상당한 부분을 문자에 할애했다. 폰트는 마치 도로 위에 도색작업으로 그린듯한 희끗희끗한 페인트 같아 보인다. 전경에 자연스럽게 오브제로 묻어가는 느낌이 인상적인다. 현빈 유지태와 같은 스타성있는 배우의 이름과 얼굴을 과감히 축소시켰다. 왼쪽 상단모서리에서 가로지르는 대로변의 부서진 아스팔트는 긴장감을 주고 45도 기울어진 문구는 고속도로의 차선 같은 느낌을 주며 영화의 질주하는 듯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꾼' 영화 포스터>

2. 문구도 오브제로- ‘반드시 잡는다’
  어둡고 미스터리한 음산한 기운이 도는 하늘, 낡은 복도식 아파트의 주민들은 마치 일상인 듯 집밖으로 나와 1층의 상황을 관망한다. ‘오늘, 또 한명이 죽었다’ 라는 끔찍한 문구는 아파트 3개의 층을 가득 채우는데 주민들은 거대한 글자의 무게에 아무렇지 않게 사이사이 부대껴있다. 산만하고 자잘한 소품과 인물들이 등장하여 글자까지 한눈에 보기엔 다소 부담스러우나,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주변부도 샅샅이 관찰하게 되는, 눈길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영화 전체 시나리오를 관통하고 스토리텔링 하는듯한 디자인이다.

<사진= '반드시 잡는다' 포스터>

3. 착시(?)인듯 아닌듯, 형식파괴- ‘종로 3가역 2번 출구’
 롱테이크 실험 영화라는 정체성을 포스터 디자인에도 충분히 살려냈다. 연극적인, 다큐적인 감성을 담아냈다- 마치 착시효과인 듯 아닌듯, 그림파일이 아닌 문서 파일과 같은 느낌, 제목 외 빼곡히 적힌 페이크 이력서 형식의 디자인은 되려 ‘시선강탈’의 요소로 작용한다. 작은 폰트, 반으로 나눈 다단효과, 빼곡히 적힌 4줄의 공허한 멘트가 주는 압도감은 휘황찬란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3D그래픽못지 않은 효과를 낸다. 문구와 타이포그래피만으로 충분한 시각적 효과를 디자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영화 포스터>

위 3편의 영화 포스터를 보아 알겠지만 폰트 자체의 파격은 크게 주지 않았지만 과감한 배치와 디자이너의 대담함이 포스터 디자인의 혁신을 일궈내고 있다. 모든 자극과 정보가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오가는 현대에 데이터를 많이 차지하는 고해상도의 이미지가 모든 극을 지배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다시 문자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영화 작품만큼이나 포스터 디자인도 유심히 챙겨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