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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식기, 정치철학을 담다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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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청와대 식기, 정치철학을 담다

정희정(객원 에디터/문화사학자)
“그릇에 정치를 담다니요. 밥을 담고, 국을 담아야지요.”
그릇에 음식만 담으면 그만일 텐데, 청와대나 백악관 같은 정치적 공간이나 정치인 또는 왕실의 인물이 사용하는 물건은 은연중에 정치철학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은 국빈만찬에 주로 일본 도자기회사 노리다케의 제품이 주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한국도자기에 청와대에서 사용할 식기제작을 의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첫 청와대 주문 식기에는 그릇 가운데 청와대 상징인 금색 봉황문양, 그리고 청초한 초롱꽃이 적당한 간격으로 반복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한식기, 양식기, 그리고 주안상 등 다양한 그릇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게 식판모양의 식기도 만들어졌는데, 이는 군인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때 디자인에 전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육영수 여사였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필요와 육영수 여사의 취향이 결합되어 탄생한 이 그릇은 주문 생산된 게 1973년이니 육영수 여사가 실제 사용한 것은 아쉽게도 1년 남짓밖에 안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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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정희정 직접 촬영>

첫 청와대 디자인 식기는 금색 봉황문양이 없다면 화려한 구석이라고는 볼 수 없이 담백합니다. 이는 이후 청와대에서 사용한 식기와 비교해보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대에는 화사한 연보라색 철쭉꽃 문양이, 노태우 대통령대에는 금색이 들어간 십장생문양 등으로 청와대 식탁은 매우 세련되고 화려해졌습니다. 그 뒤를 이은 김영삼대통령대에는 이전에 사용하던 식기를 그대로 사용하여 손명숙 여사의 검소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하지요. 김영삼대통령의 칼국수대접도 이 그릇에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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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전두환대통령 식기 , (우)노태우대통령~현재 식기
<사진출처 =  이화여대박물관 [상차림의 미학 ]전시 도록>

이 청와대 디자인식기는 백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본차이나 기법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본차이나는 글자 그대로 소의 뼈를 넣는 거지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흙에는 규소라는 성분이 필요한데, 영국의 흙에는 규소가 부족하여,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 수 없자 1790년대 조쉬아 스포드(Josiah Spode)가 소뼈의 재 성분을 넣어 만든 도자기를 본차이나라고 합니다. 일종의 대안으로 개발된 본차이나는 이전까지의 도자기보다 흰색이 선명하고, 경도도 강해 이후 세계적으로 고급 도자기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청와대에서 도자기를 주문했을 때 아직 한국에서는 본차이나 기법이 도입되지 않았는데, 이 식기를 제작하면서 본차이나 기법을 도입하여 기술력도 높였고, 나아가 한국도자기도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사용한 대통령의 식기를 전시했다가 청와대의 요청으로 전시가 도중에 중단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영상 대통령대인데 아마도 화려해 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이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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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대통령의 식기 전시 장면(경향신문 1997.6.26)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쳐>

청와대에서 식기를 디자인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멋스러운 일인데, 최근에는 대통령이 새로 취임해도 패션에 관한 이야기만 있지 식기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어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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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은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쳤으며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가나아트센터 큐레이터,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연구원으로 각종 문화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저서로 <종가의 제례와 음식> 시리즈, <한국의 무형문화재 시리즈 – 채상장> 등을 저술했다. 정희정은 특히 한국의 음식문화를 연구하고 미술사를 전공하는 과정에서 그릇의 역사와 쓰임에 큰 관심을 갖고 그릇과 조리도구의 디자인, 담음과 차림이 잘 어우러진 상차림의 중요성에 대해 즐겨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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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푸드디자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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